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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작가 쇼팽의 일생, 작품, 특징

by 정보창구방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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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작가 쇼팽의 일생, 작품, 특징

1. 쇼팽(Frederic Chopin)의 일생

프레데릭 쇼팽은 1810년 폴란드 바르샤뱌 근처의 젤리조 바볼라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니콜라스 쇼팽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사회적인 불안을 피해 폴란드로 이주한 프랑스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르샤바에서 귀족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중 폴란드 귀족 출신인 유스티나 크지노프스카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1남 3녀를 낳았는데, 음악가 쇼팽은 그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몸이 유독 약했습니다.

 

여느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로 쇼팽 또한 어릴 적부터 음악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네 살때 피아노 기초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열두 살 때부터 바르샤바 음악학교 교장인 엘스너에게 정식으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엘스너는 쇼팽의 독창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그 결과 쇼팽은 열다섯 살의 나이에 <론도 작품 1>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그는 마침내 러시아 황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연주를 들은 러시아 황제는 매우 흡족해하면서 칭찬했습니다. 그는 또 이 무렵에 시골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면서 폴란드의 민속음악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이때의 경험은 그의 독특한 음악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8세가 되자 쇼팽은 베를린을 방문하여 유럽 음악계를 견학하였고, 다음 해에는 유럽 음악의 중심지인 빈으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독주회를 열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단한 칭찬에도 불구하고 쇼팽의 마음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고백할 수 없는 짝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바르샤바 음악원 성악과에 다니는 여학생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를 남몰래 사모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사랑을 고백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너무 여리고 섬세한 그에게 짝사랑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곁에서 애태우느니 차라리 영원히 그녀의 곁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 후로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빈을 떠나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쇼팽은 어느 날 고국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동안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지배 아래 숨죽여 살던 폴란드 국민들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느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외세를 몰아내고 폴란드 국민들 스스로 나라를 다스리게 되도록 쇼팽 역시 혁명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에 의해 혁명군을 몰아내면서 혁명에 실패합니다. 쇼팽은 러시아 황제가 다스리는 한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후 조국을 침범한 러시아에 대한 분노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절대로 공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쇼팽 생전에 폴란드는 독립되지 못하였습니다. 쇼팽은 늘 조국인 폴란드를 그리워했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어릴 적 배운 민속음악을 떠올려 선율을 되살려 폴로네이즈, 마주르카등 폴란드 춤곡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을 작곡하였습니다. 1832년 파리에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쇼팽은 첫 연주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연주회는 유명한 피아노 제조업자 가 자신이 만든 피아노를 널리기 위해 쇼팽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보고 공연을 열었습니다.

 

첫 공연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예술을 사랑하는 파리 시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연주자로, 작곡가로 인정받게 되며, 귀족 자제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높은 보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쇼팽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보고 싶어 했지만 부끄럼 많고 섬세한 성격인 쇼팽은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대규모 공연보다 몇몇 사람이 모인 친숙한 분위기에서 연주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 때문에 주로 귀족이나 유명 인사들이 자주 모이는 살롱에서 연주하기를 즐겼습니다. 첫 연주회를 계기로 파리의 귀족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 쇼팽은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에 운명의 여인 인 여섯 살 연상의 소설가 조르주 상드를 만났습니다.

 

상드는 여리고 섬세한 쇼팽과는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사랑하게 됐지만 파리 사교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게다 그 즈음 쇼팽은 폐결핵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요양할 겸 마요르카 섬 북쪽의 버려진 수도원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9년을 살다 상드의 아들과 딸을 키우는 문제로 크게 다투고 헤어지게 됩니다. 그 후 쇼팽의 병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38세의 나이로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2. 음악적 특징

쇼팽은 피아노를 너무나 사랑한 음악가였으므로 주로 피아노곡을 만들었습니다. 피아노를 잘 알고, 피아노의 능력을 최대한 살린 음악가입니다. 그는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섬세하고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가 자유자재로 노래 부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피아노를 위한 소품곡을 많이 만들었는데, 야상곡(녹턴),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환상곡, 프렐류드, 왈츠가 있습니다.

 

낭만파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음악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음악이란 바하나 모차르트처럼 실생활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베토벤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수단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매우 서정적입니다. 인간이 흔히 느끼는 희로애락보다는 아련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마치 글 대신 피아노로 쓴 한 편의 서정시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쇼팽의 피아노 음악 일반적 특징을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전통적 장르: 소나타, 변주곡, 론도, 스케르초
  • 춤곡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 마주르카, 폴로네즈, 왈츠
  • 성격적 소품: 녹턴, 즉흥곡, 발라드, 바카롤, 판타지
  • 에뛰드, 프렐류드

마주르카와 폴로네즈는 폴란드의 민속 곡을 바탕으로 썼는데 이중 <폴로네즈 A♭>와 <폴로네즈-판타지>는 애국적인 정열을 보여주는 웅장한 곡입니다. 에뛰드는 기교를 향상하려는 교육 목적의 곡으로 음악성과 테크닉을 동시에 요구하는 수준 높은 에뛰드라는 평을 듣습니다. 오늘날 대학 입시곡으로 빠지지 않는 장르입니다. 바흐의 프렐류드와 쇼팽 프렐류드의 차이점은 단순한 전주 기능이 아닌 독립적인 곡으로 특정 분위기나 악상, 테크닉을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3. 쇼팽의 작품

  • 피아노 협주곡 제1번 E단조
  •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
  • 발라드 제1번 G단조
  • 즉흥환상곡 제4번
  • 폴로네즈 “영웅”
  • 전주곡 제15번 “빗방울 전주곡”
  • 강아지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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